“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이 망했을 때도 구독을 끊지 않았어요. 월간은 돈의 영역이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죠. 처음 구독한 1980년부터 지금까지 일상의 큰 즐거움이었어요.”최창열(70) 독자는 42년째 본지를 구독하고 있는 장기 독자다. 1980년 본지를 구독한 계기는 등산마니아였던 아내의 권유 덕분이었다. 당시 그가 일하던 동서식품에서 사내 산악회가 결성되어 산행대장을 맡게 된 것. 등산을 즐겨 하던 아내는 “월간을 구독해 정보를 얻으면 산행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해, 이렇게 본지와의 인
남해관광문화재단 윤문기 팀장은 국내 걷기길 대부로 통한다. 출판사의 걷기출판팀장으로 걷기길 관련 7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인터넷 걷기 카페 ‘발견이의 도보여행’을 개설해 2만 회원 모았다. 2011~ 2020년 동해안 해파랑길 770km 노선개발과 운영관리 책임을 맡았고, 코리아둘레길 4,500km 기획과 실사팀 운영총괄을 맡았다.남해바래길은 2010년 만들어져 지역민이 중심이 된 ‘남해바래길사람들’이 운영했으나, 개통 10년을 맞아 대대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남해군의 판단으로 걷기길 전문가를 공채해 윤문기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교동도는 미각 여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1960~1970년대 시장통에 온 것 같은 대룡시장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꽤 훌륭한 추억 여행지다.젓국갈비는 교동도와 강화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유의 음식. 1,000년간 대물림되어온 이곳 고유 음식으로 고려시대부터 왕실과 양반가에서 즐겨 먹었다는 설이 있다. 소금 대신 새우젓으로 간을 하여 맛을 내는 것이 특징. 돼지갈비와 뼈, 새우젓 국물을 넣고 푹 끓여 만든다. 돼지고기맛, 새우젓의 깔끔한 맛, 두부의 고소한 맛까지 더해져 세대를 넘어 부담 없이 먹기 좋은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3~
‘저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북한 마을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항상 뉴스로만 보았던 북한을 망향전망대 망원경으로 보았다. 생각보다 가까웠고, 우리나라 1970년대 풍경 같았다. 북한이 가까운 섬 교동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군 검문소를 두 번 거쳤을 뿐인데 공기가 바뀌었다. 더 정확히는 소음이 줄었다. 추수가 끝난 농경지는 황량했고, 육중한 침묵이 지그시 공기를 누르고 있었다. 간간이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는 차량만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 주었다. 201
괘방산 산행만 하고 돌아가는 건, 강릉까지 와서 바다 구경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산행과 연계 가능한 정동진 부근의 볼거리·먹을거리를 소개한다. 임해자연휴양림은 숙소 창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국내에 몇 없는 황금 조망을 갖추었다. 또 방마다 테라스가 있어 바다 풍경을 조금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휴양림은 강릉통일공원 내에 있다. 전투기가 전시된 야외전시관, 통일전시관을 살펴볼 수 있다. 휴양림에서 곧장 괘방산 산행이 가능하며,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다. 등산동호인부터 가족단위 여행객까지 눈높이를 고루 맞출 수 있는 시설인 것
“산을 산악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통제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허용하되 자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지만 캠핑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관리 인력이 없어서 어렵다면, 부산산악연맹에서 관리하겠습니다.”부산산악연맹 회장 새 회장에 최재우(60) 동아지질 대표가 취임했다. 지리학과를 나온 그는 전공을 통해 산을 처음 접했으며,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를 통해 산악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최 회장은 “바른 등산문화를 전달하고자 원로산악인 다섯 분이 의기투합해 만든 게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라며 “12년째 무료로 운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휴양림 창문을 열자 -16°C의 냉기가 국경 경비원의 깐깐한 시선처럼 덮쳐왔다. 설국으로의 입국이었다.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추위를 삼켜버린 건, 순백의 능선. 현란한 바위선의 9할이 생략된 대담한 솜씨,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설경에 시선이 빨려들고 있었다. 폭발적인 흡인력으로 마음을 잡아당기는 흰 산줄기, 저 산에 몸과 마음 오롯이 포개고 싶었다.한파특보와 대설특보가 동시에 내렸다는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등산화에 스패츠를 단단히 고정했다. 공기는 냉동실 같아도 하늘은 한없이 푸르다. 한파
하이원리조트 방역 현장은?거리두기 시대의 스키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월간이 직접 강원도 정선 하이원 스키장을 찾았다. 전국의 스키장이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지난해 12월 24일 폐쇄되었으나 1월 4일 재개장했다.눈 많이 내리고 추운, 여느 해보다 스키를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이지만, 북적거리는 인파는 없었다. 스키장 입구부터 코로나 예방 수칙을 알리는 현수막과 대형 사인물이 여럿 있어, 경각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모든 건물 입구에는 열화상 카메라와 자동발열 체크기가 설치되어 있어, 하루에도 여
당일치기 가이드덕적도는 교통이 불편하다. 백패킹이든, 당일산행이든, 여행을 하든, 일정을 짤 때 이동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철부선에 차를 싣고 가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차를 실을 수 있는 배는 하루 한 번(09:10)만 운항하며 차량 1대 기준 왕복 도선료 11만~12만 원선이라 비용도 부담스럽다. 버스로 이동하고자 한다면, 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배 도착 시간에 맞춰 순환버스가 운행하는데, 조금 머뭇거렸다간 버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다리가 이어져 있는 부속 섬인 소야도행 버스와 서포리행, 북리행 버스
바다만 보는데 위로가 되었다. 하염없이 해변을 어루만지는 여린 파도, 그 손길에 부드러워진 모래사장. ‘덕을 쌓는다’는 이름처럼 덕적德積은 선한 적요寂寥가 끝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여백의 미美로 남은 물욕 없는 해변에 텐트 한 동 치고 가난한 식사를 할 적, 쏟아지는 별무리. 꾹꾹 눌러 왔던 뜨거운 감정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와 아득한 세상으로 풀려난다. 덕적도에선 바다만 보고 있어도 자유로워진다.“우리 섬은 걸으면서 봐야 제대로 보여요. 비조봉 올랐다가 서포리해수욕장 둘러보고, 바갓수로봉까지 걸었다가, 소야도를 빼놓을 수 없지. 때
우도 1박2일 백패킹 가이드우도의 부속섬인 비양도에서 야영하고, 올레길(1-1코스)도 걷는 1박2일 트레킹 여행이 가능하다. 천진항에서 일몰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해 방향을 정해야 한다. 산호해수욕장 방향인 시계 방향으로 갈 경우 비양도까지 약 8㎞ 거리이며, 등대가 있는 쇠머리오름을 경유하는 반시계 방향으로 갈 경우 5㎞ 거리이다.추천 코스는 천진항에서 쇠머리오름에 오른 후 검멀레해수욕장으로 내려와 경관을 감상하고, 우도 순환버스를 타고 비양도로 가서 야영하는 것. 검멀레해변에서 비양도까지 올레길은 도로를 따르는 구간이 많아 배낭이
비로소 생각이 멈췄다. 울컥 바다를 뚫고 솟구친 태양은 모든 걸 삼켰다. 밤이 낮이 되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변화. 첩첩산중 능선에서 맞는 해돋이와 다른 뭔가가 차오른다. 작품처럼 구름이 멋지게 흘러가고, 일출은 모든 소음을 삼키며 세상을 바꿔놓았다.별 시답잖은 것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얼마나 멈춰 세우고 싶었던가. 그 순간이 왔다. 마음이 멈추었다는 것도 잊은 채 망연히 바다만 바라보았다. 멈춘 마음을 바람이 뒤에서 꼭 안아 왔다. 배배 꼬였던 낡은 감정이 첫 햇살 속에서 슬그머니 풀리고 있었다.우도의 새끼섬인 비
섬은 날 때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에서 망망대해의 거리를 두고도 씩씩하게 잘 살아낸다. 고독을 숙명으로 여기는 섬은 거리두기 시대의 모범인지도 모른다. 조금 고독해지는 곳으로 망명이 필요한 시절이다.먼 섬으로의 망명은 시작부터 좌초되었다. 쾌속선이 고장나 당분간 이곳 선착장엔 배가 정박하지 않는다며 부두 관계자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일러 주었다. 다른 선착장으로 가면 오후 배로 들어갈 순 있지만, 내일 파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어 하루 이틀 못 나올 수 있다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친절히 해주었다. 먼 섬은 먼 섬
낚시 바늘에 걸린 고기처럼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인천 앞바다의 섬, 무의도 말이다. 섬으로 태어났으나 강제로 육지화되는 과정은 혹독했다. 기존의 소박한 길은 모두 옛 것이 되고, 산의 살점을 깎아 작은 섬에겐 지나치게 큰 옷 같은 신작로를 내고, 곳곳에 건물이 올라가고, 흙이 시멘트로 바뀌고. 무위자연 없는 무의도가 되었다.용과 호랑이가 싸웠다는 예사롭지 않은 전설이 있는 호룡곡산虎龍谷山(244m)에 공사 소음이 울려 퍼지자, 검은 능선이 고통스러운 듯 펄떡였다. 시선을 움켜쥔 바다는 잔잔하다 못해 적요했으나 해무를 풀어내며, 산이
빗소리는 하루 이틀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텐트에 떨어지는 간질간질한 산비 소리를 좋아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나라가 슬픔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여행을 권할 만한 시기는 아니었으나 출장을 미룰 순 없었다. 예정된 인천의 섬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섬, 비가 오지 않는 섬을 찾아 하염없이 달렸다.충남 땅 지나 전북 군산으로 접어들자 마른 땅이 나타났다. 30℃가 훌쩍 넘는 무더위, 모처럼 만난 여름이었다. 군산 시내를 지나 옛 군산으로 향했다. 10년 전의 황홀한 미모가 떠올랐다. 노을이 견
통영에선 미모가 자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미인도에 와서야 알았다. 반은 푸르고 반은 하얀, 섬섬옥수 모래해변은 감미로웠다. 연하고 깨끗한 산호빛 바다와 부드러운 섬의 곡선은 눈부시게 잘 어울렸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하염없이 밀려오는 호소력 짙은 바다. 각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있었다.비진도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서자 미인이 말을 걸어왔다. 별다른 설명 없이 ‘미인도전망대’ 팻말만 있어도 풍경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 “너무 아름다워 미인도구나” 혼잣말을 하는데, 내가 뱉은 것만 같았다.턱까지 차